선미님의 집 (1인가구)

서울 성북구 16평

선미님의 집 (1인가구)

서울 성북구 16평

부모님, 언니와 넷이 살던 집이었습니다. 최소한의 손길만 닿은 채로 7년이 흘렀어요. 예쁜 소품을 사 모아도 베이스가 받쳐주지 않으니 집과 겉돌기만 했고, 그 아쉬움이 쌓여가는 걸 알면서도 쉽게 손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부모님이 갑자기 시골로 내려가셨고 언니도 독립을 하면서 집이 오롯이 나 혼자의 것이 되었어요. 그때 알았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안 될 것 같다는 걸.’


눈이 많이 내리던 날, 라이크라이크홈 팀과 처음 만났습니다. 깜깜했던 머릿속에 형광등이 켜지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것도 고칠 수 있어요.’ 그 말들은 단순한 상담이 아니었습니다. 이 집이 정말 변할 수 있다는, 조용하고 단단한 희망이었어요.

공사는 두 가지 기준을 세우고 시작했어요. 하나는 기능의 회복. 오래 괴롭혀온 외풍과 곰팡이, 노후한 화장실. 주거의 가장 근본적인 것들을 제대로 되돌리는 것. 다른 하나는, 나의 욕망에 충실한 공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 해보고 싶었던 것을 전부 펼쳐보는 것. 1987년에 지어진 이 집은 단 한 군데도 유지한 곳이 없습니다. 껍데기만 남기고 전부 새로 세운 것이나 다름없는 대공사였어요. 공사 중 예산이 초과되어 원목 헤링본 마루를 강화마루로 바꾸는 방안을 여쭤봤어요. 실장님이 바로 변경된 시안을 보여주셨는데, 그 순간 눈으로 알았습니다. 마루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공들여 빚어오던 공간이 순식간에 낯선 얼굴이 되었습니다. 마루를 포기한다는 건 이 집의 결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어요.


현관의 포인트 벽지도 원래는 예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내려놓았던 소재였어요. 그런데 공사 도중 실장님이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집에는 그 벽지가 딱인 것 같다고. 본인이 소장하던 벽지를 현관만이라도 시공해 주겠다고. 완성된 현관을 보고 너무 행복해서 그 자리에서 어깨춤이 절로 나왔습니다. 누군가의 배려가 공간에 깃들면 이렇게 충만해질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공사는 두 가지 기준을 세우고 시작했어요. 하나는 기능의 회복. 오래 괴롭혀온 외풍과 곰팡이, 노후한 화장실. 주거의 가장 근본적인 것들을 제대로 되돌리는 것. 다른 하나는, 나의 욕망에 충실한 공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 해보고 싶었던 것을 전부 펼쳐보는 것. 1987년에 지어진 이 집은 단 한 군데도 유지한 곳이 없습니다. 껍데기만 남기고 전부 새로 세운 것이나 다름없는 대공사였어요. 공사 중 예산이 초과되어 원목 헤링본 마루를 강화마루로 바꾸는 방안을 여쭤봤어요. 실장님이 바로 변경된 시안을 보여주셨는데, 그 순간 눈으로 알았습니다. 마루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공들여 빚어오던 공간이 순식간에 낯선 얼굴이 되었습니다. 마루를 포기한다는 건 이 집의 결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어요.


현관의 포인트 벽지도 원래는 예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내려놓았던 소재였어요. 그런데 공사 도중 실장님이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집에는 그 벽지가 딱인 것 같다고. 본인이 소장하던 벽지를 현관만이라도 시공해 주겠다고. 완성된 현관을 보고 너무 행복해서 그 자리에서 어깨춤이 절로 나왔습니다. 누군가의 배려가 공간에 깃들면 이렇게 충만해질 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주방 상부장을 자세히 보면 90도가 아니에요. 살짝 기울어져 있어요. 손을 뻗었을 때 그릇이 자연스럽게 닿을 수 있도록 조용히 설계된 각도입니다.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디자인이었죠. 상부장을 없애는 게 추세인 시대에 오히려 이 집만의 독보적이고 개성 넘치는 공간이 되었어요. 거기다 수납까지 챙기면서!

주방 상부장을 자세히 보면 90도가 아니에요. 살짝 기울어져 있어요. 손을 뻗었을 때 그릇이 자연스럽게 닿을 수 있도록 조용히 설계된 각도입니다.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디자인이었죠. 상부장을 없애는 게 추세인 시대에 오히려 이 집만의 독보적이고 개성 넘치는 공간이 되었어요. 거기다 수납까지 챙기면서!

인테리어 후 가장 큰 수확은 집이 꽁꽁 숨겨두었던 선물을 받은 거예요. 집 뒤에 산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7년 동안 그 풍경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어요. 심한 외풍과 곰팡이 때문에 베란다는 언제나 창문을 가려둬야 하는, 봉인된 공간이었거든요. 공사를 마치고 창을 여니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운 풍경이 거기 있었습니다.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과 울창한 나무들이 창밖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요. ‘이 집이 원래 이렇게 좋은 걸 품고 있었는데, 내가 너무 몰라줬구나.’ 기능을 되찾으니 집이 오래 간직해온 것들을 조용히 내어주었습니다.




공사 전의 저는 거실이라는 좁은 섬에 갇혀 있었습니다. 밥도, 휴식도, 잠도. 거의 모든 생활을 거실 소파 테이블 앞에서 해결했어요. 집을 고치고 난 뒤 가장 달라진 건 공간의 쓰임이 다양해졌다는 거예요. 요리에 전혀 소질 없던 제가 요리책을 샀을 정도로요! 식탁에 제대로 차려진 식사를 마주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창문으로 계절이 바뀌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방으로 잠을 자러 들어가는 그 짧은 순간조차 행복합니다. ‘여기서 내가 살고 있어. 여긴 온전한 내 공간이야.’ 매 순간 그 확신이 드는 것. 그것이 이 집이 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인테리어 후 가장 큰 수확은 집이 꽁꽁 숨겨두었던 선물을 받은 거예요. 집 뒤에 산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7년 동안 그 풍경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어요. 심한 외풍과 곰팡이 때문에 베란다는 언제나 창문을 가려둬야 하는, 봉인된 공간이었거든요. 공사를 마치고 창을 여니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운 풍경이 거기 있었습니다.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과 울창한 나무들이 창밖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요. ‘이 집이 원래 이렇게 좋은 걸 품고 있었는데, 내가 너무 몰라줬구나.’ 기능을 되찾으니 집이 오래 간직해온 것들을 조용히 내어주었습니다.


공사 전의 저는 거실이라는 좁은 섬에 갇혀 있었습니다. 밥도, 휴식도, 잠도. 거의 모든 생활을 거실 소파 테이블 앞에서 해결했어요. 집을 고치고 난 뒤 가장 달라진 건 공간의 쓰임이 다양해졌다는 거예요. 요리에 전혀 소질 없던 제가 요리책을 샀을 정도로요! 식탁에 제대로 차려진 식사를 마주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창문으로 계절이 바뀌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방으로 잠을 자러 들어가는 그 짧은 순간조차 행복합니다. ‘여기서 내가 살고 있어. 여긴 온전한 내 공간이야.’ 매 순간 그 확신이 드는 것. 그것이 이 집이 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