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크라이크홈 손명희의 집(부부, 어린이)

서울 성북동 45평

라이크라이크홈 손명희의 집 (부부, 어린이)

서울 성북구 45평

주방 고친 건 아깝지만 

사람 앞길은 아무도 모른다고 하죠. 전세로 살던 집의 주방을 두번째 고치고, 다섯 달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어요. 계약 만료까지는 아직 1년, 그러니 가볍게 임장이나 해볼까 싶어 나선 길에서 그만 ‘운명 같은 집’을 만나고 말았어요. 성북동 언덕을 따라 내려오는 순간, 나의 모든 가능성을 품어줄 집을 찾았다는 예감에 가슴이 뛰었죠. 물론 애정 가득 들인 주방이 아른거리긴 했지만, 앞으로 펼쳐질 삶의 장면들이 훨씬 더 설렜습니다.


아파트를 떠나 주택으로

임장 리스트에 올렸던 대부분의 집들은 아파트가 아닌, 테라스가 있는 빌라나 정원이 딸린 타운하우스였습니다. 라이크라이크홈을 운영하며 깨달았거든요. 결국 사람을 끌어당기는 집은 자연과 긴밀하게 연결된 형태라는 걸요. 사계절을 집 안에 들이고, 구조 자체가 재미를 주는 그런 집. 광교 나리님 댁이나 탈로 제주 프로젝트처럼, 이전 작업들이 저에게 영향을 준 것도 분명합니다. 꿈꾸던 집의 밑그림엔 언제나 바람과 나무, 햇살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있었어요.

집이 주는 실험의 기쁨

이 집은 2층에 현관이 있어요. 주택 단지 전체가 경사진 지형 위에 지어졌기 때문이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공용 공간인 거실과 주방, 팬트리, 건식 욕실이 이어지고,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침실과 서재, 아이 방, 드레스룸, 세탁실, 욕실이 자리합니다. 이 독특한 구조도 첫눈에 반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였어요. 공간이 가진 고유한 흐름을 보존하고 싶어서 바닥재, 문틀, 높은 걸레받이, 계단 난간은 그대로 두고, 주방 가구와 붙박이장, 조명, 가전 등에 집중해 새로운 이야기를 더했습니다. 

인테리어는 늘 실험의 연속이지만, 고객의 공간에서 저만의 실험 정신을 풀어놓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번엔 오롯이 제 취향을 반영한 테스트의 시간이었습니다. 평소 궁금했던 소재와 마감재를 마음껏 써보자는 의도였죠. 고재 느낌이 나는 건식 무늬목, 가죽 텍스쳐를 가진 레더마감 천연 대리석 상판, 유리 전면 도어의 가구들. 비용적으로 부담이 컸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운 선택들이 되었어요.

주방이라는 이름의 두 번째 거실

여러 해외 자료들을 모으며 은근히 부러워했던 마음이 있었던 걸까요. 언젠가 나도 해보리라 다짐했던 그 주방 구조를, 드디어 우리 집에 실현하게 되었어요.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주방을 보고 직감했습니다. ‘아, 여긴 대면형 주방으로 딱이야.’ 거실과 주방이 나란히 연결된 구조, 가족 셋이 도란도란 모여 함께 요리하고 대화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함께 있다는 그 온기, 그게 일상에 주는 위안이지요.  

인테리어를 시작하기 전, 푸드와 관련된 일에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덕분에 수많은 가전과 부엌 도구들을 손끝으로 익혔고, 삶 속에 스며드는 기계들의 결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죠. 이번 집엔 가스레인지와 노출형 아일랜드 후드, 식기세척기를 들였는데요, 지금껏 써본 것들 가운데 손꼽힐 만큼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일까요, 가전 상담을 요청받을 때면 자연스레 한 마디 더 보태게 돼요. 하하. 공사는 결국, 선택과 집중의 예술이에요. 나에게 진짜 기쁨을 줄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어떤 선택이 삶의 만족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지. 그 본질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고, 찬찬히 계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침 커피 내리는 시간

워킹맘이라면 다들 공감하실 거예요. 아침에 커피 내리는 그 몇 분의 정적이 하루 중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걸요. 그 순간을 더 의미 있게 만들고 싶어, 주방 한켠엔 실제 카페 동선을 그대로 적용했어요. 수년 간 다양한 카페 인테리어를 해오며 터득한 노하우가 녹아든 결과죠. 더스트통을 매립한 것도 그중 하나인데요, 커피 찌꺼기를 털어낼 때 가루가 날리지 않아 관리가 훨씬 편해요. 쓰레기통까지 매립하니 커피존 공간이 쾌적하고요. 커피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고려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그 작은 디테일이 홈카페의 만족도를 눈에 띄게 높여줍니다.

건실 욕실 속 세모 거울

‘건식 욕실은 좀 달라도 되지 않을까.’ 여행과 출장에서 만난 공간들이 하나하나 제 안에 그림처럼 쌓였고, 그 기억이 이 욕실의 디테일을 만들어줬어요. 호텔에서 인상깊게 봤던 욕실 벽의 식물, 그림, 부드러운 조명들. 그 장면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래 아껴둔 빈티지 거울을 걸고, 좋아하는 그림도 한 점 더했죠. 

예상치 못한 자리에 놓인 사물은 공간에 작은 파동을 일으킵니다. 익숙했던 풍경에 낯선 숨결이 스며들면, 매일 마주하던 곳도 다시 눈길이 머무는 장면이 되지요. 거실 조명도 그런 존재예요. 언뜻 보기엔 벽에 걸린 단순한 부채 같지만, 사실은 독일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의 조명 작품입니다. 낮엔 오브제처럼, 밤엔 은은한 빛으로 분위기를 감싸주는 이 아이템은 공간에 마법 같은 생기를 더해줘요. 그 아래엔 모든 것을 포근히 감싸주는 화이트 패브릭 소파가 자리해 있고요. 좋아하는 것들로 조화롭게 균형을 맞춘 공간이야말로 가장 나답게 아름다운 집이라고 믿어요.

그럼에도 사랑하기 되기까지 1년

정남향 집이라 당연히 햇살이 가득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사 후 알게 됐죠. 앞동과 옆집의 건물 구조 때문에 빛이 드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걸요. 집에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던 제가 핸드폰을 내려놓게 될 만큼 낙담했지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었어요. 하루에도 잠깐 스며드는 햇살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질 줄 몰랐죠. 오히려 눈이 편안해져 테라스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었고, 덕분에 빛의 방향과 조도를 연구하며 공간을 다시 보는 눈도 생겼어요. 북향 집 공사를 맡게 되도 잘할 것 같아요. 하하. 

이 곳에서 첫 봄을 맞이하며 미니 텃밭을 만들고, 테라스 가구를 들이고, 겨우내 웅크렸던 식물들을 햇빛과 바람 속으로 내보내며 자연과 한 뼘 더 가까워졌어요. 어느새 저녁 식탁에 올릴 채소를 직접 따는 이 시간이 제게는 커다란 선물이 되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나만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느껴져요. 자연과 연결된 일상, 그 안에서 얻는 영감과 평화. 그런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낸 제 자신에게, 이제는 마음껏 칭찬해주고 싶어요.